블라인드 마음아픈이야기


새벽에 익명의 힘을 빌려 글을 써봅니다.

현 남자친구를 만난지는 10개월 정도 되어가네요.

남자친구가 다니는 회사에 저도 다니다가 이직을 했어요. 재직기간이 4개월 정도 겹치더라구요. 저는 회사 다닐 당시에 남자친구 존재도 몰랐고, 근무하는 층도 아예 달랐으며 일적으로 마주칠 일도 없었구요ㅋㅋ 퇴사를 하고서 다른 회사를 다니던 중에 인스타로 연락이 왔네요. 우연히 제 계정을 알게되었다며 메세지로 혹시 어디 근무하시지 않았냐고, 첫눈에 반했는데 차가워 보여서 번호는 차마 못물어보다 언제부터인가 안보여서 어디갔나 했다고ㅋㅋㅋ

메세지가 일회성으로 온 것이 아니라 몇달에 걸쳐서 세번정도 왔더라구요. 저는 그걸 늦게 확인했고 보자마자 느낀 것은 아무에게나 그냥 연락하는 그런 건 아닌가보다 회사도 검증되어 있으니 sns에서 연락을 받긴 했지만 괜찮겠지 하고선 연락처를 주었지요. 그 뒤로 매일 한시간 넘게 통화를 했네요. 고향도 가깝고 성격, 취향 등 많은 공통점이 있어서 더 급속도로 친해졌습니다. 첫 데이트로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분위기 좋은 칵테일바를 가서 그 날 바로 고백을 받았네요. 금사빠라 오케이했고 담날 바로 잠까지 잤어요. 변명을 대자면 제가 그 다음날부터 해외 출장 일정이 있었어서 사랑이 마구 샘솟을 시기에 애틋함이 배가 되더라구요. 이르게 관계를 갖고 담날 남친이 새벽에 공항까지 데려다 주겠다네요. 저 먹버 당하는거 아닌가 조금은 걱정했었는데 남친 정말 휴가쓰고 꼭두새벽에 저희 집까지 저 데리러 왔더라구요. 그 때 이 남자다 했던거같아요. 알콩달콩 공항데이트도 즐기고 출장 가있는동안 남자친구가 너무 너무 보고싶어서 둘 다 목소리 녹음해서 보내고 영상통화하고 난리도 아녔죠 ㅎㅎ

귀국날에도 저를 모시러 왔더라구요. 그런거 보고선 남자친구한테 완전 마음을 열었어요. 그 후로 매주 주말마다 데이트도 하고, 여행도 다녀오고...

그런데 만난지 7개월쯤 되니 남자친구 이상한 점이 하나씩 보입니다. 우선 인스타에서 여자친구 있는 티도 하나도 내질 않고 예쁜 여자들 팔로우 하지를 않나 댓글도 달고ㅋㅋ 또 본인 폰 항상 뒤집어놓고 화장실갈때두 꼭 챙겨가요.

뿐만 아니라 제가 잘 때 진짜 깊게 잠들어서 뭘해도 모르는데 손가락을 제 폰에 갖다대고 지문인식으로  몰래 제 폰 뒤진거있죠 ㅋㅋ 문자, 통화내역, 인스타, 사진첩 골고루도 봤대요.

제가 지랄해대니 미안하다고 사과하고선 그 이후로도 두세번 더 제 폰 몰래 훔쳐봅니다.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싸우기 시작한 것 같아요. 전 원래 사귀는 사이라도 상대방 폰 관심 없어여 서로 프라이버시 지켜줬음 좋겠고 바람필 사람은 어떻게든 바람을 핀다는 주의기 때문에 굳이 신경안썼죠.

다툼 있을때마다 남친은 능청스럽게 넘어갔습니다. 전 속으로 쌓아두고 뭐 하나 걸려라 싶었죠

그 때 확신한건 바람피는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쟤 폰보면 내가 맘아플 일이 무조건 있을 것이다.

그 이후로도 보통 커플들처럼 사이 좋다가 투닥대다가 그렇게 지냈어요. 다만 변한 건 제가 남친을 100퍼 믿진 않는다는거? 어느정도 선을 그었었죠

지지난주 토요일인가 남친차에 탔는데 네비 최근목적지가 이태원역으로 나옵니다. 금요일 운동 끝나고 집에 가서 잔다고 통화까지 했는데 그 이후로 친구생파때매 클럽 오라고 호출 당해서 새벽에 기어나갔답니다. 난리 난리를 쳤죠 남자친구 저한테 거짓말해서 너무 미안하다고 앞으로 이런 일 없게 하겠댔어요 ㅎㅎ

저도 남친 없을 때는 클럽 종종 갔었는데 지금은 남친이 경기를 일으켜서 안가거든요 근데 저 가는건 그렇게 싫어하면서 본인은 몰래 다녀온거죠ㅋ

제가 헤어지자고 말까지 했었는데 남친은 우리 좋았던 기억, 여행갔었던 기억 추억팔이하며 저 붙잡았고 끝내 헤어지진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주말 남친차로 고향에 함께 내려가고 있었어요. 전화가 왔는데 폰이 블루투스로 연결되어있으니 전화번호가 차화면에 바로 뜹니다.

저장을 안한 번호더라구요.

남친 첨엔 뭐지 하고 안받다가 두번 오니 아 택배기산가보다 하고 반갑게 전화 받대요

그 순간 오빠~~~왜 마음이 변했어 어쩌고저쩌고 여자 목소리

ㅋㅋㅋㅋㅋㅋㅋㅋ남친 안절부절 어쩔줄몰라하는데 웃겨 죽는줄요 한다는 말이 "누구누구야 지금 나 여자친구랑 같이 있어 전화 끊어"

그 여자 반응은 얼탱이가 없다는듯 "뭐???하..." 이러다가 남친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고 그 이후에 전화가 계속 걸려옵니다.

남친은 연락하지 말라고 여자한테 말하고 전화 무시했네요. 전 그 때 화면에 뜨는 여자 번호 외워두었습니다 ㅋㅋ

차에섬 정적이 흐르고 남친 암말도 못하고 제 손만 잡고 있었어요. 제가 치우라고 설명을 해보랬죠.

그 이태원 사건때 사실 자기가 놀다가 어떤 여자한테 번호를 줬는데 스킨쉽은 전혀 없었고 그 담날 너한테 너무 미안해져가지고 더 이상 연락을 안했다. 연락 갑자기 싸그리 무시하니 저 여자가 저렇게 나오는 것이다

전 남친한테 신뢰가 없으니 전화 다시 걸어보라했죠 난 니 여자친구니 지금 이 사실이 맞는지 바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그니까 남친이 내가 말한게 다 사실이고 전화를 한다고 해서 바뀌는 것도 없는데 너 기분만 상한다며 자기는 안했음좋겠다고 한참 실랑이했어요 둘이

그러다가 저랑 남친이랑 각자 집 가고 아까 봐뒀던 여자 번호로 전화를 했습니다.

사실은 즉슨 제가 최근에 잠깐 해외여행을 혼자 다녀왔는데 그때 아만다라는 소개팅어플을 했다네요 ㅋㅋㅋㅋ 당연히 여자친구 없는척했고 한명을 낚은겁니다. 저보다 두살 어린 친군데 심지어 저랑 이름이 자음 한글자 빼고 같아요.

걔랑 자보려고 공들이다가 두번까였나봐요 존심도 상하고 그쯤 클럽사건으로 제가 지랄해서 그 여자한테 연락을 안했대요. 남친 혼자 자취하는데 그 집에 저 여자 데려갔답니다 자주 놀러오라고 현관문 비밀번호도 알려주고 카톡도 중간중간 겁나 열심히 했네요 일도 안하고 하루종일 폰만 봤나 봅니다. 본인이 어디서 뭘하는지 보고도 꼬박꼬박 그 여자한테 하고 ㅋㅋㅋ평소에도 신뢰감을 주려고  저한테도 겁나 열심히 보고했거든여 그 여자는 평일에 연락 잘되다가 주말에 남자가 연락 두절이니 이상하다 싶다가도 만나보면 아리송하고, 가끔 이름을 이상하게 불러서 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답니다.(제이름으로 부름)

그와중에 연락도 뜸해지고 하니 남친한테 전화로 그렇게 물어봤던 모양인데 여친있다는 사실을 알고 빡돌았더라구요

여자랑 저랑 통화했고 모든 이야기 듣고 술도 한잔 했어요ㅋㅋㅋ 제 남친 지방대 출신에 진짜 운좋게 좋은 회사 들어갔는데 부심에 엄청나거든요.

그 여자는 학생이라 어려서 뭘 모른다 생각했던 모양인지 차부심에 대기업부심 온갖 있는척은 다했다네요. 집에 뭣도 없는데 못난놈 ㅋㅋ

저는 그 여자랑 통화하고 알게된사실 다 모른척 하고있구요. 평소보다 더 다정하게 남친을 대하고있어요. 어제오늘도 서로 계속 결혼얘기 이런거 하고 ㅋㅋ

남친은 제가 봤을때 저를 사랑하긴 하지만 정신병자이고 섹스중독자같아요 저한텐 또 평소에 엄청 집착하고 도라이같아요

저랑 헤어지고서도 정상적인 결혼생활이 가능할까 걱정이 됩니다. 개쓰레기인걸 알았으니 정리를 해야겠죠.

마침 담주에 남친이 해외출장을 열흘정도 갑니다. 공교롭게 저희가 처음 만나고 젤 애틋했을 때 제가 갔던 출장지와 겹치네요ㅋ

장난삼아 결혼얘기 신혼여행은 어디로 갈지 요새 이야기 중인데 일부러 제가 더 그런 쪽으로 이야기를 이끌고 있어요. 좀 더 드라마틱한 복수를 위해서

제 계획은 남자친구가 출장간다고 비행기를 타는 순간 모든 연락수단을 다 끊고 잠수탈 예정입니다. 평소에 저한테 잘못한게 많았을거같으니 뭐때매 그러는지 감도 못잡고 멘붕올거라 생각해요.

객관적으로 봤을 때 제가 남친보다 훨 나은데 살다살다가 이런 일을 다 겪네요. 진심 재수없아요

남자친구가 진짜 약았는데  제가 외모나 회사 재력 딱히 딸리는게 없거든요 그거 아니까 결혼은 하고싶어 하는거같고 근데 제가 잠깐이라도 없으니 다른 여자 몰래 만나고 ㅋㅋㅋ 진짜 노답입니다. 여태 만난 사람으로서 애정을 갖고 말하자면 진심으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이 되고 또 저를 상대로 이런 짓을 벌인 것에 대하여 너무나 괘씸하네요.

남은 며칠동안 좋아쥭는 연기 하다가 잠수이별 하려고합니다. 어떤 행동을 어떻게 할지 침착하게 시뮬레이션 해보고있어요 머릿속에서ㅋ

더 상처줄 수 있는 방법은 뭘까요 그리고 정말 제가 지금 생각을 실행할 수 있을까요

지금 가장 힘든건 배신감도 배신감이지만 남자친구가 저를 볼때의 표정과 행동은 진짜라고 느꼈는데, 어느 순간이 정말 진심이고 거짓이었을까 너무나 궁금해지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간이 콩알만해서 하루만에 지울듯해요 그럼 안녕

출처 : 블라인드 IT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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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카리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프로그래밍, 취업 및 직장생활 전문 블로그

원글은 출처에 링크해놓았습니다.
 
 
일단 첫 베오베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베오베가 될 줄은 몰랐네요.
먼저 제가 소소한 자랑이라고 한 이유는 전산직은 7급이라고 해도 일행직보다 커트라인이 10점 가량 낮아요 ㅎㅎ
(올해 기준 커트라인 전산직 71점대, 일행 81점대)
그래서 그런 사람들에 비해서 소소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어째튼 축하를 많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같이 취직이 잘 안 되는 시대에 그래도 IT 계열은 그나마 취직이 되는 편이잖아요??
그런데도 제가 공무원을 선택한 이유는 솔직히 말하자면 제가  예를 들어, 삼성sds 등 대기업에 취직한다 한들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까의 고민 때문이었어요.
제가 똑부러진 성격을 가지지 못했거든요.
처음 시작은 이러한 이유로 공무원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직렬은 컴퓨터공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전산직을 택했고 목표는 크게 잡는 것이 좋으니 7급을 준비했습니다. 7급을 준비하면 못해도 9급을 갈 수 있겠구나 싶었죠.
 
그래서 2014년도 새해 결심으로 휴학하고 무작정 전산직 공부를 시작했죠.
사실 공무원을 준비하려면 이것저것 많이 알아보고 시작했어야 했는데 앞서 말했듯이 똑부러진 성격이 아니라서....ㅋ
국가직, 지방직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로 시작을 했고 일단 실력부터 쌓자는 식으로 집에서 인강을 들었습니다.
인강으로 공부를 시작한 이유는 집안 사정상 서울 학원가에 살면서 실강 들을 수는 없었거든요.
 
인강도 많이 알아보고 시작하지 않아서 보편적으로 좋은 강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잘 맞아서 좋았어요. 
 
전산직 시험과목이 공통과목(국어, 영어, 한국사), 전공과목(자료구조론(이하 자구), 데이터베이스론(이하 db), 소프트웨어공학(이하 소공), 정보보호론)이기 때문에 전공과목은 근자감 때문에 일단 처음엔 공통과목만 공부했습니다.
 
공부시간은 하루에 10시간을 잡고 했습니다.
 
국어는 재정국어를 들었습니다. 이 책은 상당히 올드하게 구성이 되어있지만 예시도 많고 저처럼 구성이나 디자인 신경 안 쓰는 사람에게는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저는 국어를 공부할 때 1독할 때는 무조건 감각(예를 들어, 어떤 문제의 선택지에 있는 문장이 어떠한 문법이 적용되는지는 바로 몰라도 맞는지 틀리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을 익히는 데에 주력했습니다. 또한 제 공부스타일이 오래 매달려서 마스터하고 넘어가기보다는 어느정도 알게 되면 넘어가고 다시 또 반복하고 반복하고 해서 익히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영어는 신성일 영어를 들었습니다. 문법 부분에서 잘 나오는 부분 위주로 찝어줘서 공부시간을 절약하는 데에 도움이 됐습니다. 정말로 웬만해선 문법은 나오는 부분 위주로 나오더라고요. 하지만 예외를 위해서 다 공부를 하긴 해야 합니다. 그래도 시간 절약하는 데에는 잘 나오는 부분 위주로 하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영단어는 날짜별로 외울 부분 나눠진 영단어책이 좋다고 생각해서 보카바이블(노랭이)을 썼습니다. 학습방법은 보카바이블에 적혀진 학습방법대로 했고요. 독해는 감이 정말 중요합니다. 지문의 단어 전부를 다 알아도 감이 없으면 풀 수가 없습니다. 평소 책을 많이 읽어 머리 속에서 문장이 쉽게 완성되는 사람들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체를 해석하기보다는 독해스킬도 많이 익숙하도록 연습했고, 단어는 많이 알 수록 유리하고, 다 해석이 안 돼도 문장을 머리 속으로 대충 만들어지는 정도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사는 정재준 한국사를 들었습니다. 뭔가 정석적으로 가르친다기보다는 꼼수로 가르쳐서 어설퍼 보일 수 있는 강의입니다. 하지만 첫글자 암기비법이 의외로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첫글자를 그냥 아무렇게나 따기보다는 임팩트가 있고 리듬감있게 가르쳐줘서 잘 외워졌던 것 같습니다. 8월29일 이후로 공부 놨는데도 아직까지도 첫글자 암기비법 안 까먹고 잘 기억합니다. 하지만 그 암기법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구석구석 자세한 내용까지도 잘 외워야되는 단점이 있습니다.ㅠㅠ
 
이렇게 2014년 상반기 공통과목만 공부했습니다. 늦게서야 정보처리기사가 전산직에게는 필수자격조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여름부터 정보처리기사 공부를 병행해서 2014년 8월에 필기 보고 10월에 실기를 봐서 합격했습니다. 교재는 시나공으로 했습니다. 100점 맞고 싶으면 이 책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하지만 자격증 시험이니까 적당히 합격만 하고 싶다 하시면 시나공 도움 많이 되는 것 같습니다.
 
2014년 2학기 때부터는 복학을 했습니다. 굳이 수험공부 중에 복학한 이유는 4학년이 되어야 정보처리기사 응시조건(필기 합격자가 제출 기간에 4학년 재학증명서 제출해야 함)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학점은 거의 포기하겠다는 마음으로 이수만 하자는 생각으로 다녔습니다.
 
과목은 딱 3학점짜리 4개(전공 1개, 교양3개)를 했습니다. 그래도 학교다니면서 수험공부가 가능했던 게 제가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mt도 안 갔고 새로운 인맥을 쌓기보다는 있던 인맥들 위주로만 가끔씩 만났기 때문에 학교생활에 시간을 거의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또한, 전공1과목이 컴퓨터보안이라 정보보호론이랑 맞는 부분이 많아 시간을 많이 안 뺏겼습니다. 또, 교양 1개는 한국사였습니다. 또 교양 1개는 음악(P/F과목)이라 시험기간에만 하루 잡고 몇 시간 암기하면 이수는 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 다니면서 수업시간 이외에는 다 공부를 했습니다. 제 전산직 전공과목은 정보처리기사 시험이 끝나고 2014년 10월부터 시작했습니다. 10월부터는 공통과목(3과목)+전공과목(4과목)을 공부하게 된 거죠.
4과목 전부 지안에듀(탑스팟 교재)에서 인강을 들었습니다.
저는 하루에 7과목을 다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하루는 공통과목, 하루는 전공과목 이렇게 번갈아가면서 했습니다.
 
자구는 제가 컴퓨터공학 2학년 시절에 열심히 했던 과목이라 금방 금방 익힐 수가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안 배웠던 내용이 거의 없어서 유리했던 것 같습니다. 코딩 과제도 많이 했어서 자구 알고리즘 코드도 금방금방 이해되고 좋았습니다. 자구는 암기보다는 이해 위주의 과목입니다. 무조건 알고리즘의 코드 중요 부분은 원리를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물론, 특성들은 암기하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시험 시간에 시간을 많이 안 빼앗기려면 알고리즘 과정과정들을 많이 직접 해봐서 시험볼 때 과정을 금방 파악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db도 학교에서 3학년 때 들었던 과목이라 용어들이 많이 익숙했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걸로 커버가 안 되는 부분들이 많았지만 익숙한 용어들로 익히는 데에 도움이 많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db는 대부분 암기해야 할 부분이고 sql 같은 것들은 수행결과를 알 수 있도록 이해를 잘 해놓아야 합니다.
 
소공도 학교에서 3학년 때 들었던 과목이라 익숙한 용어들이 있었습니다. 이것도 학교에서 배운 걸로 다 커버가 안 되었지만 도움은 많이 됐습니다. 소공은 외울 때 주의해야 할 점들이 너무 그 말이 그 말 같은 것들이 많아서 헷갈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엽적으로 공부할 때는 다 아는 것 같이 외웠어도 종합적으로 시험을 볼 때는 헷갈릴 수가 있기 때문에 확실하게 외워야 합니다.
 
정보보호론도 제가 컴퓨터보안 과목을 학교에서 들으면서 같이 듣느라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정보보호론은 깊게는 안 들어가는 것 같아서 말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별로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범위가 넓어서 꾸준히 하지 않으면 진도가 빨리 안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정보보호론은 2014년도부터 실시됐기 때문에 아직 난이도도 제대로 조정이 안 되었고 범위도 확정되지도 않은 것 같고 깊게 나오고 있지가 않습니다. 따라서 넓은 범위를 포인트를 잘 잡아서 꾸준히 반복해서 암기하시면 아직까지 전공4과목 중에서는 어려운 과목은 아닌 것 같아요.
 
그리고 7급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9급 시험도 보험으로 보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2015년 4월 국가직 9급 시험을 신청했고 전산직 9급 시험과목은 국어, 영어, 한국사, 컴퓨터일반(이하 컴일), 정보보호론이기 때문에 컴일만 추가로 공부하면 됐습니다.
컴일은 80점만 맞자는 생각으로, 그동안 7급 전공과목을 공부해서 밑바탕이 돼 있기 때문에 7급 전공과목 공부를 잠시 멈추고 3월부터는 공통과목+컴일+정보보호론을 했습니다. 3월부터 이론서와 문제집을 병행해서 했고 컴퓨터공학을 전공했고 7급 전공과목을 공부했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80점까지 맞을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4월 18일 국가직 9급을 응시했습니다. 이 때 수정테이프를 안 가지고 가서 낭패를 보았습니다. 마킹을 잘못해서 답안지를 교체했는데 생각보다 마킹에 시간이 오래걸리더군요. 그래서 정보보호론 6문제를 마킹하지 못했습니다.ㅠㅠㅠ 한 문제 고치려다가 많이 날렸죠. 저는 마킹 금방할 줄 알았습니다ㅠㅠ. 아, 국가직에서만 수정테이프 쓸 수 있습니다.  
필기점수 평균 78점을 맞았고 보험으로 삼자고 치르게 된 국가직 9급 시험을 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에 휩싸였습니다. 그래서 지방직 9급도 응시하기로 맘먹었습니다.
(공무원 시험은 일단 신청해놓고 안 보는 사람도 허다합니다. 저도 국가직 9급 점수 잘 받았으면 지방직 9급은 응시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고 나서 다시 공통과목 + 7급 전공과목을 공부하다가 6월부터 컴일을 복습을 좀 해주고 6월 27일에 지방직 9급 시험을 봤습니다.
 
다행히 지방직 9급을 준비하던 6월 중순에 국가직 9급 필기 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커트라인 76에 제 점수 78이었기 때문에 면접에서 떨어질까봐 지방직 9급 시험 준비는 계속했던 것입니다. 지방직 9급 평균은 84점을 맞았습니다. 그러고나서 7월25일에 국가직 9급 면접을 보았고 면접을 잘 못하기에 마음은 초조했습니다. 기다리는 와중에 8월초에 지방직 9급 필기도 합격을 통보받았습니다. 근데 이게 웬걸 지방직9급 선발예정자가 2명이었는데 필기에서 2명을 붙인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로만 듣던 1배수... 면접에서 뻘짓하지 않는 한 붙었겠죠. 그리고 며칠 후 국가직 9급 최종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인생에서 첫 결실이라 생각해 기분이 엄청 들떠서 난리도 아니였습니다. 저는 지방직보다 국가직을 더 선호하기에 지방직 면접은 과감히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7급 공부를 계속했습니다. 8월에는 공통과목 동형모의고사도 많이 풀었습니다. 그렇게 기다리던 8월29일이 되었고 국가직 7급 시험을 봤습니다. 시험은 다소 어려웠습니다. 특히 한국사에서 제가 모르는 거와 헷갈리는 게 많았습니다. 채점을 했더니 한국사가 무려 55점 ㅠㅠ 믿었던 과목이기에 실망이 컸습니다. 국영한 중에서 한국사를 제일 잘했었는데 너무 자만해서 소홀해졌나 봅니다. 국어도 70 영어도 70... 
전체적으로 9급에 합격한 후에 안도감과 자만감으로 공통과목에 소홀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자구 100 db 85 소공 75 정보보호론 85로 평균 77.14를 맞았습니다. 공통과목을 못봤지만 그래도 전산직 7급 2014년 커트라인이 74점대니까 필기합격은 하겠구나 싶어서 초조함보다는 그동안 못했던 게임도 많이 하고 친구들도 만나고 여행도 다니고 휴식을 가졌습니다.  
다들 한국사가 어려웠는지 전산직, 일행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커트라인이 하락했습니다. 전산직 7급 2015년 커트라인은 71점대로 10월 중순에 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 뒤로 면접 준비를 했습니다. 11월 15일에 몹시 떨리는 상태였지만 자신감을 가지고 침착하려 노력했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버벅일 때도 있었고 전체적으로 못했다는 생각과 아쉬움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최종합격 발표일인 11월27일까지 엄청 초조했습니다. 그래도 결국 붙여줬더라고요. 11월 27일에 최종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여기까지가 제 길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는 여정이었습니다. 제가 워낙 공대생이다 보니 글 쓰는 거 정말 못합니다.
그래도 긴글 읽어주신 분 계시다면 정말 감사합니다.  
 
 
 추가로
 
시험볼 때는 과목순서랑 시간안배하는 전략이 중요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공통과목을 먼저하고 자신있는 전공과목을 나중에 했습니다.
이 과목 순서와 시간 안배는 사람마다 성향이 다 다르기 때문에 본인이 모의고사를 연습하면서 본인에게 가장 적합한 전략을 짜야 합니다.
저는 공통과목 중에서는 머리가 별로 지치지 않는 한국사를 1번째로, 보통인 국어를 2번째로, 머리가 가장 지치는 영어를 3번째로 풀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한국사에 15분 정도 국어에 15분 정도 영어에 30분 정도 걸립니다.  
 전공과목은 그냥 순서대로 풀었습니다. 자구에 27분정도 걸렸고 db에 18분정도 소공에 13분정도 정보보호론에 13분정도 걸렸고 9분 10분 정도는 마킹하는 데에 썼습니다.
 
면접은 제가 자신있게 한 부분은 아니었습니다. 말을 잘 못하기 때문에 면접 때가 걱정이 많이 됐지만 아직까지도 필기성적이 최종합격을 많이 좌우하는 것 같습니다. 블라인드 면접임에도 그게 가능하다는 것은 아무래도 면접 점수를 매길 때 미흡을 잘 안 준다는 것일 수도 있겠네요.
면접은 평가 결과가 우수, 보통, 미흡으로 나뉘고 우수는 필기성적에 관계없이 합격, 보통은 필기성적순으로 합격, 미흡은 필기성적에 관계없이 탈락이거든요. 면접에 자신없는 사람들은 무조건 필기점수를 넉넉하게 잘 받으세요.
저는 면접스터디 모임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면 좋지만 스터디모임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 혼자서 했습니다. 혼자 방에서 공무원면접책을 보고 생각을 정리하고 혼자서 떠들고 혼자서 pt면접도 연습하고 집단토의를 대비해 주장과 근거를 대는 연습도 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면접에서 자신은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자기 생각을 충분히 정리해놨으면 웬만하면 대답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간혹 순발력을 요하는 난처한 질문도 하지만 그 때는 본인의 순발력을 발휘해주시면 됩니다. 그래도 앞서 말했듯이 미흡을 잘 안 주는 것 같으니 너무 부담은 가지지 마세요. 
 그리고 별로 국가관이나 공무원관 가지고 시작하지 않은 저같은 사람도 계속 생각도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애국심도 생기고 올바른 공무원관도 생기더라고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제가 고시생다운 생활을 하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하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한번도 슬럼프에 걸리지 않고 끝까지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저의 취미생활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취미생활을 줄여야 하지만 아예 포기하는 건 웬만한 정신력으로는 힘든 것 같아요. 포기할 정신력이 된다면 포기하셔도 되지만 저는 그렇지 않아서 하루에 1시간 30분씩 꼭 웨이트트레이닝을 했습니다. 물론 너무 빡세게 하지는 않아 운동 후 공부할 기운도 없어지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최대한 운동 시간을 늦은 시간에 해서 그 이후에 지친 몸으로 많은 시간을 공부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또한 바쁘더라도 3끼는 꼭 챙겨먹고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도록 해서 건강한 신체를 유지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공부가 질리지도 않고 공부에 지치지도 않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30분 정도씩 산책을 해서 정신을 정화하는 것도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http://todayhumor.com/?bestofbest_225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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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챔피온쉽 매니저 - 대한민국 원문보기   글쓴이 : 바람구름별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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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web.humoruniv.com/board/humor/read.html?table=pds&pg=0&number=544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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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로 작성된 CGI 바이너리(CGI binary) 집한’을 배포할 때만 해도 라즈무스 러돌프는 자신의 창작물이 웹 개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지 몰랐을 것이다. 마이애미에서 열린 올해의 선샤인PHP(SunshinePHP) 컨퍼런스에 개막 연사로 자리한 러돌프는 “1995년 당시 웹 상에 C API를 내놓았다고 생각했다. 그건 착각이었다. 만일 그랬다면 우리 모두 C 개발자가 돼있을 테니 말이다”라고 말했다.

처음 러돌프가 퍼스널 홈 페이지 툴(당시에는 PHP를 이렇게 불렀다) 버전 1.0을 내놓을 때만 해도, 웹은 아직 유아기 단계였다. HTML 2.0이 탄생한 것이 그 해 11월 이었고, HTTP/1.0은 이듬해 5월이 돼서야 탄생했다. 당시 가장 널리 사용되던 웹 서버는 NCSA HTTPd였고, 가장 유명한 웹 브라우저는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Netscape Navigator)로 인터넷 익스플로러는 그 해 8월이 돼서야 처음으로 세상 빛을 보았다. 다시 말해 PHP의 탄생은 다양한 브라우저들의 탄생과 경쟁의 시작과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졌다 할 수 있겠다.

당시 사건들을 잘 살펴보면 PHP가 웹 개발에 미친 엄청난 영향을 알 수 있다. 당시 웹 앱의 서버 측면 프로세싱에 있어서는 선택지가 무척 제한적이었다. PHP가 생기고 나서야 웹에서 여러 가지 다이내믹한 시도들을 할 수 있는 도구가 생기게 된 것이다. PHP의 실용적인 유연성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이후 PHP는 웹과 함께 성장의 궤를 함께 해왔다. 오늘날 웹의 80% 이상을 장악한 PHP는 특히 웹 문제 해결에 적합한 스크립팅 언어로 자리잡았다. PHP가 걸어온 길을 보고 있자면 이론에 대한 실용주의의, 그리고 순수성에 대한 문제 해결 능력의 승리를 엿볼 수 있다.

웹을 한 데로 모아 준 접착제

디자인을 보면 알 수 있듯, 아니, 디자인이 없다는 사실로부터 알 수 있듯, PHP가 처음부터 스크립팅 언어는 아니었다. 처음에 PHP는 웹 개발자들이 초급 수준의 C 라이브러리에 쉽게 액세스 할 수 있도록 도와줄 API로 시작했다. PHP의 첫 버전은 서식 처리 기능을 제공하며 mSQL 데이터베이스와 매개변수(parameter) 요청에 액세스 할 수 있는 짧은 CGI 바이너리(binary)였다. 그렇지만 웹 앱 데이터베이스 사용 용이성으로 곧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PHP/FI라 불린 두 번째 버전에서는 데이터베이스 지원이 PostgreSQL, MySQL, Oracle, Sybase 등까지 확장되었다. 해당 데이터베이스들의 C 라이브러리를 랩핑하여 PHP 바이너리의 일부로 만든 것이다. PHP/FI 버전에서는 또한 GD 라이브러리를 랩핑하여 GIF 이미지를 만들고 조작하는 것도 가능했다. 아파치 모듈로 동작할 수도 있고 아니면 FastCGI 지원으로 컴파일 될 수도 있었다. PHP/FI 버전으로 변수, 배열, 언어 구조 등에 대한 지원이 가능한 PHP 스크립트 언어가 탄생한 것이다. 당시 많은 이들에게 PHP는 다양한 요소들을 한 데 모아 줄 접착제와도 같은 존재였다.

PHP는 점점 더 많은 프로그래밍 언어 기능을 추가하고 버전 3을 비롯해 후속 버전을 탄생시키면서도 초기의 그 접착제 역할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다. PECL(PHP Extension Community Library) 등을 통해 라이브러리를 한 데 묶고 라이브러리의 기능을 PHP 레이어에 노출시킬 수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요소들을 한 데 모을 수 있는 능력은 비록 소스 코드에 제한된 것일지라 해도 PHP의 큰 장점으로 인정받았다.

웹, 코더들의 커뮤니티

PHP가 웹 개발에 미친 영향은 비단 언어 그 자체가 할 수 있는 일에만 국한되지는 않았다. PHP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누가 그 과정에 참여하는가, 그것 역시 PHP 산물의 중요한 일부분이다.

PHP 유저 그룹은 1997년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 가장 초기 유저 그룹 중 하나는 미드웨스트 PHP 유저 그룹(Midwest PHP User’s Group, 나중에는 시카고 PHP라 불리기도 했다)으로 1997년 2월 첫 미팅을 가졌다. 웹 상의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준 PHP라는 작은 도구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모인 이들의 열정적이고 의욕적인 모임의 시작이었다. 특히 PHP의 편재성이야 말로 이를 웹 개발의 제1 선택지로 만들어 준 특징이었다. PHP는 특히 공유 호스팅(shared hosting)에서 인기가 있었고 진입 장벽이 낮은 덕에 초기 웹 개발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코더들의 커뮤니티가 커져감에 따라 PHP 개발자들을 위한 도구와 리소스를 제대로 분류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PHP에게 있어서는 분수령이라고도 할 수 있는 2000년도에는 첫 PHP 개발자 미팅이 열렸다. 여기에는 프로그래밍 언어의 핵심 개발자들이 텔 아비브에서 모여 곧 있을 4.0 버전 릴리즈를 논의했다. PEAR (PHP Extension and Application Repository)또한 2000년도에 시작돼 고 퀄리티의 유저랜드 코드 패키지를 제공했다. 어람 지나지 않아서는 독일에서 최초의 PHP 컨퍼런스였던 PHP 콩그레스(PHP Kongress)도 개최되었다. PHPDeveloper.org 웹사이트가 생겨났고 이 사이트는 현재까지도 PHP 커뮤니티에서 가장 권위 있는 뉴스 소스로 꼽힌다.

이렇듯 PHP를 둘러싼 다양한 커뮤니티의 형성은 PHP의 성장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웹 개발 산업의 폭발적 성장에 힘입어 PHP도 함께 성장했다. 점점 더 많은, 더 큰 규모의 웹사이트들을 PHP가 장악하기 시작했다. 사용자 그룹 역시 전 세계에 걸쳐 증가했다. 메일링, 온라인 포럼, IRC, 컨퍼런스, php[architect]같은 업계지, 독일의 PHP 매거진(PHP Magazin), 인터네셔널 PHP 매거진 등 PHP 커뮤니티의 성장은 코드 공유를 강조하는 협동적, 공개적 웹 개발 분위기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다가 약 10여년 전, PHP5 출시 직후 일어난 한 사건으로 인해 PHP 커뮤니티가 라이브러리, 어플리케이션을 만드는 방식에 일대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바로 루비온레일즈(Ruby on Rails)의 출시였다.

프레임워크의 등장

루비 프로그래밍 언어의 루비 온 레일즈 프레임워크는 모델 뷰 콘트롤러(MVC, Model-View- Controller) 에 더욱 집중한 아키텍쳐 패턴이었다. 그보다 몇 년 앞서 나온 모하비PHP(Mojavi PHP) 프레임워크도 이러한 패턴을 사용했지만, 루비 온 레일즈가 몰고 온 열풍이야 말로 이후 나온 PHP 프레임워크에 MVC를 단단히 박제하다시피 한 주역이었다. PHP 커뮤니티에 프레임워크의 폭발이라 할 만한 것이 일어났고 프레임워크는 개발자들이 PHP 어플리케이션을 제작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PHP 커뮤니티 내에서의 프레임워크의 급증으로 중요 프로젝트, 개발 등이 진행되었다. 2009년에는 PHP 프레임워크 정보처리상호운용 그룹(PHP Framework Interoperability Group)이 생성되어 코딩 표준, 네이밍(naming) 관습, 그리고 최선의 프레임워크 관행 등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표준들을 법제화 해 놓음으로써 개발자들에게 다른 멤버들의 프로젝트 코드를 사용해 상호운용 가능한 소프트웨어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상호운용성은 프레임워크를 여러 개의 요소로 분할할 수 있으며 단독적인 라이브러리들을 하나의 프레임워크 하에 함께 사용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그리고 2011년에는 또 하나의 획기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컴포저 프로젝트(The Composer project)가 탄생한 것이었다.

Node.js의 NPM과 루비의 번들러(Bundler)에서 영감을 얻은 컴포저 프로젝트는 PHP 어플리케이션 개발의 새 시대를 열었다. 일종의 PHP 르네상스와도 같았다. 패키지들간의 상호 운용성을 장려하고 표준적 네이밍 관습, 코딩 표준 도입, 테스트 커버리지 증가 등을 장려했다. 이는 현대 PHP 어플리케이션에 있어서 필수적인 도구이 되었다.

스피드와 혁신에 대한 요구에 부응하다

오늘날 PHP 커뮤니티는 애플리케이션 및 라이브러리 생태계를 제대로 구축하고 있다. 워드프레스(WordPress), 드루펄(Drupal), 줌라(Joomla), 미디어위키(MediaWiki) 등은 현재 가장 널리 쓰이고 있는 PHP 애플리케이션이다. 이러한 어플리케이션들은 소규모 동네 가게에서부터 백악관 웹사이트, 위키피디아에 이르기까지 규모를 막론하고 비즈니스들을 지원한다. 알렉사의 탑 10 웹사이트 중 여섯 곳이 PHP를 사용해 매일 수십 억 페이지를 처리한다. 그 결과 PHP 어플리케이션들은 스피드에 최적화 되었으며 퍼포먼스 향상을 위해 PHP 코어의 혁신에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다.

2010년, 페이스북은 PHP 코드를 C++ 코드로 옮기고 이것을 실행 가능한 바이너리 애플리케이션으로 컴파일 하는 PHP 소스-투-소스 컴파일러 힙합(HipHop)을 공개했다. 점점 더 성장해가는 페이스북으로써는 표준 PHP 코드에서 벗어나 더 빠르고, 더욱 최적화 된 코드로 옮겨 갈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페이스북은 사용의 용이성과 빠른 개발 사이클이라는 장점 때문에 PHP를 완전히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힙합은 PHP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언어 ‘핵(Hack)’을 포함하는 JIT(just-in-time) 컴파일 기반 PHP 실행 엔진인 HHVM으로 새롭게 변신했다.

페이스북의 새로운 혁신을 비롯하여 각종 VM 프로젝트들은 엔진 레벨에서 경쟁을 유발하였고 이는 언어 스펙의 문제와 PHP를 지원하는 젠드(Zend) 엔진의 미래에 대한 논의로까지 이어졌다. 2014년에는 “의미론적, 구문론적으로 완전하고 정확한 PHP 언어의 정의를 내리기 위한” 프로젝트가 시작되기도 했다. 컴파일러 프로젝트들이 상호 운용성을 띌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차세대 PHP 버전이 뜨거운 논쟁의 주제가 되었고, phpng라는 이름의 프로젝트가 PHP 코드 베이스를 개선, 최적화, 리팩터할 하나의 옵션으로 제안되었다. phpng는 실제 애플리케이션 퍼포먼스 측면에 있어서도 상당한 향상을 보여주었다. 이전에 출시되지 못한 PHP 6.0 버전이 있었던 것을 감안하여 차세대 버전을 “PHP 7”으로 부르기로 결정한 이후 phpng 가 이에 병합되었다. 스칼라, 리턴 타입 힌팅(return type hinting)등 핵(Hack)의 다양한 언어 기능이 PHP 7에 적용되었다.

PHP 7의 첫 번째 알파 버전이 공개되는 가운데, 각종 평가 수치들은 PHP 7의 퍼포먼스가 HHVM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나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어 PHP가 현대 웹 개발의 니즈에 충실히 발맞추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마찬가지로 PHP-FIG 역시 혁신을 계속하며 프레임워크와 라이브러리의 협력을 장려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PSR-7을 채택해 PHP 프로젝트에서 HTTP를 다루는 방식에 변화를 주었다. 유저 그룹, 컨퍼런스, PHPMentoring.org같은 이니셔티브들 역시 최선의 관행, 코딩 표준, 테스팅 등을 PHP 개발자 커뮤니티에 홍보하고 있다.

PHP는 그 자신의 성장과 함께 웹의 성장을 지켜봐 왔다. 처음에는 C 라이브러리의 API 래퍼로 시작한 PHP는 이제 웹 개발에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 프로그래밍 언어로 성장했다. PHP 개발자 커뮤니티는 실용주의 정신에 발담근 채 다른 어떤 커뮤니티보다도 열정적이고 의욕적으로 활동하며 커뮤니티에 새롭게 참여하는 이들을 돕고 있다. 지난 20년 간, PHP는 시간을 통한 검증을 받았으며 근래 스크립팅 언어 및 커뮤니티의 동향을 살펴볼 때 앞으로도 여전히 웹 개발에서 중요한 위치와 역할을 맡게 될 언어임이 확인되었다.

선샤인PHP 기조 연설에서 라스무스 러돌프는 과거를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별 생각 없이 시작한 작은 프로젝트로 여기까지 올 줄, 20년 전에는 꿈에도 몰랐다.”

그 ‘별 생각 없이 시작한’ 작은 프로젝트를 오늘날 웹 개발의 중요한 일부로 성장시켜 온 러돌프와 PHP 커뮤니티에게 찬사를 보낸다. editor@itworld.co.kr 


출처 : http://www.itworld.co.kr/news/94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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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포트 SSAT 인강] 2015 상반기 황현빈의 한방으로 끝내는 SSAT

 

 

 

 

 

 

출처 : http://www.w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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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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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웹하드

 

 

 

 

 

몇십년뒤에 될꺼라는 핸드폰이 불과 3년 뒤에 현실화되었다..

 

출처 : http://web.humoruniv.com/board/humor/read.html?table=pdswait&pg=0&number=3414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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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web.humoruniv.com/board/humor/read.html?table=pds&pg=3&number=493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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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닥취고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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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web.humoruniv.com/board/humor/read.html?table=pds&pg=0&number=493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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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웃긴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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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보면 이 MVP 라는 팀들이야 말로

진정한 성공자라고 볼 수 있겠네요

정말 눈물없인 보기 힘든 팀들이지요


MVP red

앨런킹, 불켜보니타릭[Valentine], 악마, junegi, CYNE

 

MVP white

작은두뇌, [Homme], 양키, 미마, 잊혀진계절[4seasons]

 

MVP blue

선자, 강퀴, 노처리, The hermes, Me5


이때당시 노페(노처리)는 S급 정글러 였고

MVP 블루가 주전팀이였고 White 와 Red는 떨이 팀이었죠

2012년 섬머 리그에 출전하는 팀들이였고

첫 롤챔스 출전이였으며 정말 야심찬 팀들이였습니다.

(참고로 잊혀진계절이 임프...양키가 댄디일걸)


근데 댄디가 계정정지를 먹으면서 MVP 화이트는 롤챔스 참가도 못해봅니다

그리고 예선전에서 MVP 레드가 떨어지면서 롤챔스 16강도 가보지 못하게 되고

MVP 레드는 방출당하게 됩니다.

MVP 블루는 롤챔스 16강은 갔으나 이때당시 최강팀인 CLG EU와 CLG NA를

같은 조에 배정받게 되면서 16강 광탈을 하게 됩니다.


그 이후 NLB 에서 MVP 화이트가 양학을 하면서 2012 NLB 섬머는 

MVP 화이트가 우승하게 되는데...롤드컵 출전 3/4위 서킷포인트 결정전을 하게 됩니다.

근데..하필이면 상대가 블레이즈 였고 정말 처참하게 패배를 하게 되면서

캡틴잭의 도발이 시작됬죠. "NLB 우승팀 따위에게 특혜가 과한것 같다.."

인터뷰에서 말했던 거고 실제로 MVP 화이트의 경기력은 

블레이즈 입장에서 보자면 브론즈 수준이였습니다.


이때부터 시작이였습니다. MVP 화이트의 댄디와 임프 옴므는

정말 칼을 갈기 시작했죠. 오죽하면 2014년 스프링 인터뷰에서

댄디가 "블레이즈에 대한 원망은 거의 없어졌지만 아직도 어느정도 있다"

라고 할 정도이니...아직도 원망하고 있다는 이야기지요..ㄷㄷ


그 이후 롤드컵기간 동안 MVP 화이트는 칼을 갈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윈터시즌이 드디어 왔습니다.

이번엔 좀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으나..



MVP 블루는 탈락하게 되고

MVP 화이트는 8강에 진출하나...광탈당하고 맙니다.

이후 MVP 블루는 2012 NLB 윈터에서 우승한 GSG의 

멤버들을 대려오면서 노페가 나가게 되고 대대적인 리빌딩에 들어가면서

클럽마스터즈에서 우승하게 됩니다.

이후 MVP 화이트는 팀명을 MVP 오존으로 바꾸게 되지요


결국 2013년 스프링...MVP 오존은 눈물의 다데와 MVP 레드에 있엇던

마타를 영입하게 됩니다.

그이후 MVP 블루는 다시 16강 광탈을 하게 되면서 비시즌 최강자란 칭호를 얻게 되고

오존만 어찌어찌 8강에 가게 되었지요


12강에서 SKT T1 K의 독주를 막은건 어떻게 보면 MVP 오존이였죠

2경기에서 예능픽 우디르와 애니비아 서포터가 나왔지만

예능픽으로도 SKT T1 K를 처참하게 발라버리고 8강에 진출하게 됩니다.

이후 KTB와의 경기! 3:1로 이기고 4강에 진출하게 되는데...

또다시 SKT T1 K를 만나게 되지만 3:1로 이기면서 결승에 진출하게 됩니다.

사실 이러면서 또다시 원한이 형성되었죠...

2013 스프링 때부터 사실 SKT T1 K와 MVP 오존은 원한관계에 들어서게 된것입니다.

피글렛은 임프 시1발련을 머리에 붙이고 피나는 베인연습끝에

결국 롤챔스 2013 섬머에서 MVP 오존을 3:1로 이기고 결승에 진출하게 되지요

그리고 이번시즌인 롤챔스 2014 스프링은 또다시 삼성오존이 3:1로 이겼습니다.

롤챔스 2014 섬머에서 전 또다시 SKT T1 K와 삼성오존이 어떤식으로던 붙을거 같네요    





근데 왜 눈물의 다데냐고요?

다데는 LOL팀 역사상 처음으로 팀이 아예 사라지는 고통을 느낀 선수거든요

스타테일에 있엇으나 팀이 사라지고 CJ ENTUS로 들어갔으나

팀에게 고통을 주면서 CJ ENTUS에서 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다데에게 남은것은 솔랭장군이라는 칭호하나...

하지만 다데를 보다못한 라이엇의 도움이였을까요? 그의 앞에 

챔프 하나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다데의 인생챔 1호이자 

다데가 제드이고 제드가 다데라고 할 수 있을정도로

다데는 제드로 말도안되는 캐리력을 보여주면서

2013 스프링에서 블레이즈를 3:0으로 이기면서 팀을 캐리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MVP 화이트는 지난시즌 섬머에 당했던

수모를 블레이즈에게 갚아주면서 결국 우승하게 되었고

이후 블레이즈는 내리막길을 걷게 되지요


어떻게 보면 삼성오존과 블루는

정말 밑바닥 부터 여기까지 자력으로 올라온 팀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강해질 수 있는거라고 전 봅니다




 


 

[출처] 섬머리그에 참가하는 국내/외 LOL 프로팀 목록 [2차 수정]|작성자 민그레

[출처] 이쯤되면 나오는 전 삼성팀...MVP팀의 과거 (리그 오브 레전드 한국커뮤니티) |작성자 카리스마대빵큰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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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lol, , 롤챔스

웃자가서 하나 더 써봅니다.
운동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고 사람들이 가장 잘 못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길더라도 쭉 읽어보는걸 권장합니다.






4-5월 되면서 날씨가 풀리면서, 많은 분들이 여름을 대비해서 살을 빼기 위해 노력합니다. 가장 흔한 운동이 바로 걷기입니다. 이맘때쯤에 대학교 운동장에 밤에 가보면 공포영화가 따로 없습니다. 바로 새벽의 저주인데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좀비처럼 걷습니다.






우리나라에 살빼기=운동=걷기 이렇게 공식처럼 된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우리나라의 스포츠 역사는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1990년  쯤에 미국에서는 고도비만이 사회적 대두로 들어나고 있었고 이 고도비만환자들을 어떻게든 치료를 해야 됐습니다. 고도비만의 특성상 달리기나 힘든 운동은 할 수 없었고 무엇보다도 운동을 하고자 하는 의지가 약했습니다. 그러니 처방 할 수 있는 것은 조금이라도 활동량을 늘리기 위해 미국스포츠의학회에서 미국 성인이면 30분씩 걷는게 좋다라는 발표를 하였습니다. 근데 앞에도 적었다 싶이 이 권고안은 고도비만자들을 감안하여 만든 사항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적 차이 없이 이 권고안이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갑니다. 그게 우리나라에게 까지 들어오게 된 것이죠.





두 번째로는 에너지소비시스템에 관한 오해입니다. 운동을 하면 아무 에너지나 무작정 쓰는게 아니라 운동 강도와 시간대별로 쓰는 에너지가 정해져 있습니다.




걷기는 다른 무산소 운동보다 지방에너지 대사 효율이 높습니다. 근데 이 말이 효과가 좋다는 것은 아닙니다. 효율과 효과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사례를 하나 들겠습니다.

A는 1시간 동안 걸어서 100칼로리를 소모했고, 100칼로리의 에너지원은 지방 40칼로리 탄수화물 60칼로리라고 가정합니다.
B는 1시간 동안 뛰어서 200칼로리를 소모했고, 200칼로리의 에너지원은 지방 60칼로리 탄수화물 140칼로리라고 가정합니다.

A의 지방소비 효율은 40%가 되고 B의 지방소비효율은 30%가 되서 단순 지방소비효율은 A가 높지만 지방소비효과는 B가 60칼로리로 A의 40칼로리 보다 20칼로리를 더 소모하게 됩니다. 결국 뛰는게 더 많은 지방을 소모하게 됩니다.(사람마다 이 비율은 다를 수 있습니다.)




이걸 그래프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습니다.
z1->z4로 갈수록 고강도 운동입니다. z1의 약 200칼로리가 안되게 소비했는데 그 중 지방소비량이 엄청 높은걸 알 수 있습니다. 비율로만 따지면 지방이 대략 70프로 이상 소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z3,z4랑 비교해 봤을때 z3,z4의 각각의 지방 소모비율은 작지만 총 소모량은 z1의 지방소비량보다 훨씬 많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자기위안입니다. 걷는게 뛰는 것 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편합니다. 몸은 편한데 살도 잘빠진다고 하니(본능적으로 말이 안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믿고 싶고 보고 싶어하는 것만 봅니다. 결국 이상한데? 하면서도 편하니까 그냥 하는겁니다.






크게 이 3가지 이유 때문에 살을 뺀다 = 걷는다 라는 것이 공식처럼 되어 있는데 이것과 더불어 알아 두셔야 할 것이 바로 산소부채소모입니다. EPOC 혹은 운동 후 초과 산소섭취량이라고도 합니다. 고강도 운동을 하면 한꺼번에 많은 산소를 필요로 하고 이 많은 산소가 제때에 공급되지 않습니다. 결국 처리하지 못한 부분을 운동 후에 따로 처리하게 되는데 이것을 회복기 초과 산소 소모라고 합니다.  





이 그래프에서 파란색은 산소부채를 말하는 것이고 노란색은 EPOC로 인한 산소 소모를 말하는겁니다. 파란색과 노란색으로 비교해보면 노란색의 면적이 좀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산소부채로 발생한 부채의 총량보다 회복기에 추가적으로 소모한 산소의 양이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쉽게 일종의 이자가 발생했다고 보면 됩니다.) 결국 원래 필요한 양보다 더 많은 산소를 소모하게 되고 일반적으로 산소의 소비는 에너지 대사의 증가를 뜻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것을 뜻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EPOC의 효과는 저강도 유산소나 웨이트에서는 쉽게 발생하지 않습니다. 인터벌 혹은 고강도 무산소 운동에서 발생하는데, 요즘 유행하는 크로스핏이나 웨이트프로그램의 서킷이나 슈퍼자이언트 셋 역시 이러한 EPOC의 효과를 극대화 하는데 매우 효율적인 운동입니다.(일반적으로 유산소는 최대심박수의 60%이상, 무산소운동은 1rm의 60%의 이상의 중량을 권장합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3줄 요약입니다.
1. 걷기와 달리기중 걷기가 지방소비 효율이 높습니다..
2. 총 에너지 소비량과 지방 소비량은 달리기가 더 높습니다.
3. EPOC등의 애프터 번 효과를 누리기 위해서는 걷거나 어슬렁어슬렁거리지 말고 열심히 하세요.


 

출처 :

http://web.humoruniv.com/board/humor/read.html?table=pds&st=subject&sk=운동&searchday=1month&pg=0&number=487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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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이 과거시험에 출제했던 현명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 구별법이라는 물제를 21세기의 자신이 받는다면 어떻게 답하겠는가

 

“왕이 말하노라. 인재는 천하 국가의 지극한 보배이다.

세상에 인재를 들어서 쓰고 싶지 않은 임금이 어디 있겠느냐,

하지만 국왕이 인재를 쓰지 못하는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요,

그 둘째는 인재를 절실하게 구하지 않기 때문이요,

그 셋째는 국왕과 인재의 뜻이 합치되지 못할 경우이다.

또한 현명한 인재가 어진 임금을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위와 통하지 못하는 것이요,

둘째는 뜻이 통하더라도 공경하지 않는 것이요,

셋째는 임금과 뜻이 합치되지 못하는 것이다.

임금이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고

신하가 임금과 통하지 않는 것은 비유하자면

두 맹인이 만나는 것과도 같다.

어떻게 하면 인재를 등용하고 육성하고 분변할 수 있겠느냐,

각기 마음을 다해 대답하도록 하라”

 

이날 장원급제한 사람이 강희맹이었는데 그의 답안은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따라서 적합한 자리에 기용해 인재로 키워야 합니다.

그리고 전능한 사람도 없습니다.

따라서 적당한 일을 맡겨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사람의 결점만 지적하고 허물만 적발한다면,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도 벗어날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단점을 버리고 장점을 취하는 것이

인재를 구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인데,

이렇게 하면 탐욕스런 사람이든 청렴한 사람이든 모두 부릴 수가 있습니다.

 

 

출처 :

 

http://cluster1.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1554X&fldid=EFTk&datanum=234&openArticle=true&docid=1554XEFTk2342008112820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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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기가 픽셀사진입니다. 후덜덜.

 

 

출처 : http://web.humoruniv.com/board/humor/read.html?table=pds&pg=0&number=478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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