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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회 행정고시 최고령 합격자 합격수기

가카리 2015. 7. 5.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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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처음에


九死一生

權 大 一


·1966년 4월 20일 生
·경북 문창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졸업
·제46회 행정고시 최고령 합격




최연소 합격을 꿈꾸며 시작한 고시공부가 어느새 10년 이상의 세월이 흘러 최고령 합격이라는 통지를 받고 보니 이제서야 큰짐을 내려놓았다는 후련함과 내 젊음을 송두리째 탕진했다는 원망이 교차합니다. 이렇게 오랜 공부기간을 거쳐 합격한 제가 합격기를 쓴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해서 합격기 쓰는 것을 망설였습니다만 이제 고시공부를 시작하는 고시생들에게는 저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게 하고 오랜 기간동안 고시공부를 하고 계시는 분들께는 저와 같은 노장 합격생도 있다는 사실에 용기를 가지시라고 격려하는 의미도 있을 것 같아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의 이야기는 제가 그 동안 경험한 것을 토대로 한 내용이니 자신의 상황에 맞게 취사선택하시기 바랍니다.




Ⅱ. 공부과정


1. 시험 제1기
군인이 되고싶어 했던 저는 육군사관학교 입학시험(신체검사)에서 낙방하고 좌절감 속에서 아무 생각 없이 고려대학교 영어교육과에 입학하였고 대학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해 재수를 결심하였으나 집안의 반대가 워낙 심하여 포기하고 1년 내내 술과 더불어 지내다 뭔가 목표를 세워야만 대학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아 선택한 것이 고시였다. 처음에는 교육직을 준비하였으나 교육학의 내용이 너무 막연하게 느껴져서 일반행정으로 바꿨다.



89년 졸업하던 해에 드디어 1차에 합격하였으나 너무 의욕이 앞섰던 탓에 2차 준비과정에서 몸에 무리가 생겨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2차는 사실상 거의 포기한 상태에서 응시하였고, 2차 불합격을 확인한 후에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군입대를 결정하였다. 군대는 공군학사장교(사후88기)로 입대하여 40개월을 근무하였는데 아마도 이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때인 것 같다. 내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휴가 기간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91년부터 행정고시 선발인원이 급격히 늘어나서(아마 일반행정의 경우 최대 145명까지 뽑았던 것 같다) 내가 군대에 있는 동안 같이 공부했던 동료들은 거의 다 합격하였다. 나도 제대해서 2년만 공부하면 합격할 것이라는 자만심에 빠져, 제대 후 2년을 버틸 자금 천만원을 과외아르바이트, 적금 및 퇴직금을 통해 마련하고 재미있게 군대생활을 즐겼다.




2. 시험 제2기(제대 후)
94년 8월말에 제대해서 다시 본격적으로 일반행정직을 준비하였다. 95년 행정고시(일반행정)에 응시하였는데 선발인원이 군입대 전의 80명으로 다시 환원되었다. 한치의 오차도 없이 내가 군에 있는 동안만 선발인원이 눈덩이처럼 늘어났던 것이다. 제기랄 되는 일이 없구만. 그러나 어쩌겠는가 다 운명인 것을 체념하고 1차에 응시하였다. 열심히 공부하여 1차에는 합격하였다. 하지만 96년 2차에 낙방하고 나니 가지고 있던 운영자금이 모두 바닥이 났다.


절망적인 상태였으나 고등학교 선배인 동기형의 도움으로 재정문제가 해결되어 다시금 도전하였는데 1차는 항상 합격하였으나 2차는 항상 낙방이었다. 하늘도 야속하지 2차를 한번만 붙여주지… 그 다음해부터는 행정고시 응시연령 초과로 더 이상 응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99년 10월 동차로 응시 한 2차 시험의 불합격을 확인한 뒤 10년 동안 품은 한을 뒤로 한 채 눈물을 머금고 행정관료가 되려던 꿈을 접었다. 방향전환을 해야 했는데 적당한 것이 없어서 1주일간 고민한 끝에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사법시험에 응시하기로 하였다.


세상이 모두 끝난 것 같은 절망감을 안고 100일간 사법시험 1차를 준비한 후 응시한 시험결과는 당연히 불합격이었으나 형법만 조금 잘 보았더라면 합격할 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집안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쳐 시험공부를 포기하고 집에서 백수생활에 들어갔다. 할 일을 찾았으나 세상물정 모르는 고시생에게 취업전선은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좌절감을 안고 집 앞에 있는 덕소중학교 테니스장에 나가서 가끔 테니스나 치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3. 시험 제3기(교직생활 및 그 이후)
그런데 어느 날 중학교 교장선생님과 테니스를 치게 되었는데 교장선생님이 대학교 선배님이셨다. 교장선생님께서는 교사자리를 물색해 줄테니 교사를 할 의향이 있는지 물으셨고 할 일이 없었던 저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고 그 곳 중학교에서 1개월의 기간제 교사를 거쳐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심석고등학교에서 2000년 5월부터 영어교사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때 교장선생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교사로 재직하던 중 그곳에서 먼저 근무하고 있던 대학동기 여교사를 만나 결혼을 약속하게 되었는데 같은 학교에서 부부가 함께 교사로 근무할 수 없다고 하여 결혼을 연기하고 타학교로 이동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나이가 많아서 이동이 쉽지 않았고 그 사이에 행정고시 응시연령이 군제대자의 경우 상향조정되어 다시 응시기회가 생겼다.




99년 1차에 합격한 후 2000년에 1차 면제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혹시 2001년에 1차가 면제되지 않는지 행정자치부에 문의하였으나 그것에 대한 경과조치가 없기 때문에 다시 1차에 응시하라는 것이었다. 제기랄 왜 딱 1년의 공백이 생기는가. 되는 게 있어야지. 하는 수 없이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1차 준비를 하기로 마음먹었으나 기존의 학교방침이 변경되어 결혼하면 부부 가운데 한 사람을 같은 재단 내에 있는 중학교로 보내 주기로 내락되어 공부는 사실상 포기상태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고시병이 도져서 2001년 교사생활을 시작하기 전의 100일간 사법시험 공부한 경험을 내세워 별 생각 없이 법무행정직에 응시원서를 접수하였다. 응시원서를 접수하고는 아예 책도 보지 않고 집사람이랑 신나게 놀았다. 그런데 구정(설날)을 지나고 나자마자 날벼락이 떨어졌다. 다른 선생님들의 반대로 중학교로 보내 줄 수 없으니 결혼하게 되면 한 사람이 학교를 떠나라는 것이었다.



1년 동안 학교생활에 적응이 되었는지 아니면 나가서 개척해야 될 생활에 자신이 없었는지 은근히 집사람이 학교를 그만두기를 바랐으나 교직생활 13년째이든 집사람은 교직생활이 겨우 1년째인 내 봉급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핑계로 내가 학교를 그만 둘 것을 종용하였고 봉급도 조금 받는 무능한 남편으로서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앞으로 1차 때까지 남은 기간은 3주.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거의 절망상태에서 3주를 보내고 1차 시험에 응시하였는데 내 자신도 믿기 어렵게 결과는 합격이었다. 그래도 비빌 언덕은 생겼다.



하늘이 나를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구나. 학교에서 한 학기를 더 근무한 후 2001년 8월말에 학교측의 요구에 의하여 퇴직하였다. 퇴직 후 진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후 내 나이 등을 고려할 때 행정고시는 내년이 마지막이고 그 동안 너무도 많이 실패를 해서 소심해 진 탓인지 단 한번만에 승부를 낸다는게 부담되어 응시기회에 있어 행정고시보다는 여유가 있는 사법시험을 준비하기로 하고 법무행정 2차 시험은 포기하고 사법시험 1차를 준비하였다.



열심히 형법공부를 하고 있던 2001년 12월말 법무행정 선발인원이 5명에서 8명으로 늘어났다는 소식이 친구에게서 왔다. 집사람의 끈질긴 설득에 굴복하여 2002년 1월1일부터 사법시험공부에서 행정고시 2차 시험으로 전환하였다. 열심히 공부하려고 하였으나 처음 보는 민사소송법은 나를 다시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었다. 마음의 방황은 계속되었고 지친 육신은 앞으로 나아가길 거절했다.



죽도 밥도 안될 것 같은 불안감과 사법시험 공부를 계속할 걸 괜히 전환했다는 후회감이 밀려왔다. 이러한 불평불만은 집사람에 대한 원망으로 바뀌어 아내를 구박하기 시작했다. 3월 한 달은 신림동에서 보냈으나 지친 육신으로는 신림동 생활을 더 이상 버틸 수 없어서 친구의 만류를 뿌리치고 고려대학교 고시반으로 이동하였다. 고시반에서 마무리 정리하고 7월 초에 응시한 2차 시험은 지금까지 본 2차 시험 가운데 가장 자신이 없었다.


2차 시험이 끝난 후 이제 더 이상은 공부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하고 업종전환을 하기로 하였다. 보습학원을 운영해 볼 계획을 세우고 여기저기 물색하고 있던 중 2차 합격소식을 들었다. 내 자신도 잘 믿기질 않았다.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자신 있게 친 시험은 모두 낙방이고 공부양도 없고 제일 엉망으로 본 시험은 합격이란다. 아마도 기존에 공부했던 게 많은 도움이 되었으리라.




Ⅲ. 공부방법론

1차는 객관식인 관계로 전 범위에 걸쳐서 문제가 출제되기 때문에 운보다 실력이 좌우하는 비중이 훨씬 크다고 생각합니다. 1차의 경우는 객관식이므로 객관식 문제집으로 대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며, 특히 여러 책을 볼려고 하기보다는 정평있는 책을 한권이라도 제대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얼마나 많은 책을 보았는지 보다 내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합격에 대한 불안감으로 분량에 신경을 쓰다보면 내용파악이 소홀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본 책을 소개하면 헌법(김학성문제집, 최치주 헌재판례) 행정법(김동희 교과서 및 문제집) 영어(신경향 아카데미 토플) 한국사(양영환 문제집) 민법(김준호 교과서 및 문제집)입니다



2차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실력 30%, 운 70%라고들 합니다. 6년 전에 대학교 선배랑 2차 시험 발표를 기다리고 있을 때 그 선배님 이야기가 2차는 제비뽑기라고 자기는 자기가 원하는 수가 나올 때까지 제비뽑기를 계속할거라고 하시기에 저는 그런 소리는 자기변명에 불과하다고 논쟁을 벌였던 기억이 납니다. 그해 내가 시험을 훨씬 잘 보았다고 자평하였는데 결과는 선배님은 합격하고 저는 불합격이었습니다. 정말 제비뽑긴가...하는 의구심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올해 2차 시험 결과를 보고 2차 시험은 제비뽑기라는 확신이 들기도 합니다.


그만큼 운에 많이 좌우된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실력 30%는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실력 30%가 갖추어져 있지 않다면 대운이 와도 결국은 불합격이라는 사실입니다. 실력 30%는 확실하게 갖춘 후에 운을 기다려야 되겠지요. 또한 2차 시험의 경우 자기 스스로의 채점은 무의미합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가장 열심히 공부했고 실력도 제일 좋다고 생각한 경우는 항상 불합격이었고 일반행정에서 법무행정으로 전환하여 준비기간이 6개월밖에 되지 않았고 가장 자신이 없었던 이번 시험은 합격하였습니다. 2차 시험을 처음 준비하시는 분은 항상 공부양의 부족을 한탄하며 후일을 기약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러나 2차는 1년 더 공부한다고 하여 반드시 합격의 가능성이 증대된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내년이 올해보다 운이 더 좋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미리 자신이 채점하여 자신의 불합격을 확신하고 시험을 포기하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랍니다.



2차의 경우 법학과목은 독학만 하지 말고 반드시 강의를 듣고 타인과의 토론을 통해 자신의 이해도를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타인과의 토론 시에 자기 생각만을 고집하면 감정이 상하기 쉬우니 자신의 오해 내지는 부족함을 솔직히 인정하고 타인의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지금 내가 모르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2차 시험장에 들어 갈 때까지만 알면 되니까요. 그리고 2차 시험에 응시경험이 없는 분은 모의고사를 통해 답안작성연습을 하는 것은 필수라고 생각됩니다. 또 2차는 1차와는 달리 자신이 직접 내용을 기술해야 하므로 교과서만 가지고 공부할 경우 분량의 방대함으로 인해 시험이 가까워지면 불안감에 사로잡히기 쉬우므로 서브노트를 만드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과목을 다 정리하기가 어려우면 몇 과목만이라도 정리를 해두면 시험이 가까워져서는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Ⅳ. 직렬의 선택 및 공부장소

예전에 저는 행정고시에서 일반행정을 준비했었는데 행정학이나 정치학, 정책학 같은 과목들이 공부하기가 막연했고 2차 점수가 채점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너무 많은 차이가 나는 것 같아 일반행정직에서 법무행정으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법학과목의 경우 적성에도 맞는 것 같았고 범위도 어느 정도 정해져 있으며 2차 시험의 경우 ‘--학’과목과는 달리 거의 정답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에 공부하기가 편할 것 같아서 법무행정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저 개인적 생각으로는 수학처럼 명쾌한 결론을 좋아하거나 권위적인 성격의 소유자들에게는 법학과목이 적합하고 자유스러운 것을 좋아하고 형식에 구속받는 것을 싫어하시는 분들은 ‘--학’이 주요과목인 직렬(일반행정, 교육직 등)이 적합하지 않을까 합니다.



공부장소로는 대학교 도서관이나 학교 고시반이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신림동 고시원의 경우 독방생활은 지치기 쉽고 별도의 독서실 이용은 비용이 부담이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노장 수험생의 경우 후배들과 함께 공부하기를 꺼리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노장 수험생들끼리 모여 있을 경우 서로에게 위안이 되어 시험준비가 느슨해질 우려가 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는 후배들 틈에 끼여 있으면 처량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자극이 되어 더욱 분발할 수 있는 계기도 될 것입니다. 그리고 시험에 자신이 없을 때는 과감히 업종 전환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현재 경제 상황이 어려워 취업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나 찾아 본다면 아주 없는 것도 아닙니다. 새로운 길을 가다가 그래도 내 길은 고시라고 생각이 들면 다시 돌아 올 수 있고 그때는 고시가 새롭게 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많은 노장 고시생의 경우 상황이 허락한다면 결혼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기존의 매너리즘에서 벗어나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Ⅴ. 마치며

지금까지 버텨 온 세월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며옵니다. 주변의 많은 분들이 도움이 없었더라면 아마도 버텨내지 못했을 겁니다. 그 오랜 세월동안 자식의 성공을 기원하신 어머니, 신혼 초임에도 불구하고 시험기간 동안 고시원으로 기꺼이 보내 준 아내, 항상 부모님처럼 뒷바라지 해 주신 형님 내외분 이하 가족들을 비롯하여 동기형, 수삼이형, 선태형, 영희형 등 여러분들의 도움에 대해 이 지면을 빌려서나마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세월이란 아무리 어려워도 지나고 나면 채색되어 추억이 되는가 봅니다. 그렇게 어렵게 지냈던 세월들이 글로 표현하려니 마치 아무 일도 아니었던 것처럼 변해버리고 마는군요. 수험생 여러분! 지금이 어렵더라도 일단 이 터널을 지나고 나면 아마 지금의 어려움도 하나의 추억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고시공부는 일단 시작했으면 중도에 그만 두기가 어렵습니다. 일단 시작했으면 끝을 보아야 하는데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는 타인의 경험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설프게 쓴 제 이야기가 이것을 읽고 있는 분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며, 여러분 모두에게 합격의 영광이 함께 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다들 파이팅-!

 

출처 : http://blog.naver.com/raillerie?Redirect=Log&logNo=162804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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